고난주간을 보내며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회사에도 변화가 있어서 2015년 1분기는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작년에 마침 집 근처의 새로운 교회로 등록을 하기도 했고 주일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또 삼다 수업으로 여러 책을 읽으며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사순절이 돌아와 특별새벽기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순절의 앞 20일은 어영부영 보내고 후반부에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하루 가고 하루 못가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 어느때보다 간절한 시절이었다. 고난주간 동안에는 페이스북을 멀리하며 업무에 열심을 다했고 어제 성금요일을 맞아 하루 금식을 했다.
아침을 여느때처럼 거르고, 점심을 건너 뛰고 외부에 나갔다 모처럼 일찍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맛있는 오리구이를 상에 차려 놓고 큰아이와 계란말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 앉아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다가 아내가 상을 다 차리고 식구들이 둘러앉고 식사기도를 하니 아 그래 내가 오늘 금식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토요일 오늘은 아내와 집 문제로 상의를 하다가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그동안 회사나 집에서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나였는데 고난주간을 잘 보내다가 화를 내니 속이 많이 상했다. 오랫만에 들어간 페이스북의 두가지 꼭지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먼저 글선생님, 박총의 글
“신은 인간을 벌하려 할 때 그의 기도를 들어준다.” (오스카 와일드)
제가 늘 품고 다니는 문장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응답받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 그래요. 실은 언제부턴가 구하는 기도를 거의 하질 않아요.
무언가 필요하다는 건 결핍이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충만합니다. 영혼과 육체에 부족함이 없어요. 결핍도 제 눈엔 아름다운 걸 보면 충만이라기보다 자족인지도 모르겠네요.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충분하니”(빌 4:18)라는 바울의 말은 고스란히 제 고백입니다. 게다가! 봄이 왔잖아요. 꽃이 피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그렇다고 기도를 안 하는 건 아닙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탄원을 멈출 수 없지요. 교회나 단체에서 말씀을 전하고 나면 초대측에서 축복해준다며 기도제목을 묻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부자증세’를 내놓아요. 절 위해서는 딱히 구할 게 없거든요. 다만 부자의 곳간은 지켜주면서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마른 걸레 쥐어짜듯 짜내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의분을 참을 수 없어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보면 늘 눈물이 나요.
제 기도는 점점 구함에서 침묵으로 옮겨갑니다. 제게 기도란 이러저러한 목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겁니다. 그냥 있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버리는 거죠. 항상 생산적이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기도조차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쏟아놓는 효율성의 원리에 물든 세상에서, 멍 때릴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침묵은 성취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저로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시편을 빌자면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임을 알찌어다”(Be still and know that I am your God)와 같은 거죠. 그나저나 말씀으로 끝맺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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