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문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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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1기 3학기 1주차,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꼽는 글 발췌 및 분석
가장 아름다운 글을 뽑으라 했다. 실용주의를 숭상하던 내 마흔 해의 삶에 아름다움이란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 아름다움은 지나가는 미녀에게나 어울리거나 기계의 완벽한 동작에 또는 프로그래밍의 무결점에서나 발견하지 않았던가. 하여 지난 6개월 간 읽었던 책들을 더듬어서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로 택했다.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 중의 한 대목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은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김승옥, 무진기행, (159,160)
나는 한동안 화창한 날씨보다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부는 약간은 음침한 그리고 비가 곧 올 것만 같은 그 직전의 날씨를 좋아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날씨와는 다른 나만의 날씨 취향이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내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런 내게 안개는 싫지 않은 자연 현상이다. 운전을 하다가 지독한 안개를 만나면 긴장하여 손에 땀을 쥐지만, 그 안개가 주는 묘한 쾌감이 있다. 사방이 안개로 싸여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때의 긴장감, 그 긴장감을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이라 표현하다니. 무진기행의 이 문구를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내가 공감하는 상황에 대한 멋진 글 앞에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무진기행의 이 한 구절은 묘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안개 낀 보이지 않는 산들을 눈앞에 그려주듯이 표현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적군이나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으로 그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은 멋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는 구절도 마음에 든다. 산이 움직일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안개에 의해 보이지 않는 산을 멋 곳으로 유배시켰다는 표현은 안개에 의해 온통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모습을 잘 나타낸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안개가 걷히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곧 펼쳐질 주인공의 삶의 상황을 잘 나타낸다. 안개에 싸인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삶과 무기력함을 이어지는 설명으로 더욱 자세히 나타내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줄곳 간결한 문장으로 가쁘게 안개를 묘사하던 문단에서 안개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문장이 점진적으로 단어와 설명을 붙여가면서 숨 가뿐 호흡으로 지금까지의 문단을 정리하고 있다. 잘 묘사된 정황이 이 문장으로 정리되면서 읽는 기분까지 저자의 호흡에 빨려가는 느낌이다. 글쓰기가 일천하나 언젠가 이 형식의 문장을 한번 사용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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