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 그리 바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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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 후속 모임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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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타는 것이 아니고 앓는 것이다.” 순식간에 스쳐지나 가는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눈을 확 잡아 끈 문장이다.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숙제 주제가 “가을”이어서만은 아니다. 문장이 참 감각 있다.ᅠ 생각해 보니 가을을 앓아 본 적이 없다. 겨우 가을 날씨 좋다고 생각한 것도 최근 몇 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더운지, 추운지는 통 관심이 없고, 더우면 더운가 보다 추우면 추운가 보다 하고 살았다. 날씨가 좋고 나쁘고, 하늘이 높고 파랗고, 구름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고개가 하늘로 향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았다. 무어에 그리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대학원에 가고, 졸업을 했다. 군대 대신 취직을 했고, 취직을 했으니 열심히 일을 했다. 학교는 돈을 내고 다녔는데 회사는 돈을 준더라. 꼬박 꼬박. 열심히 하니 승진을 시켜 준다. 승진을 하니 월급이 늘었다. 더 열심히 일했다. 첫 직장에 5년을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문을 닫았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 좀 쉬고 싶었다. 2주 말미를 받았는데 둘째가 덜컥 입원을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난생 처음 쉬는 시간이 사라졌다. 새 직장에 출근했다. 과장으로 입사했고, 차장이 됐다. 얼마 안돼 부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일 잘한다고 한다. 더 열심히 했다. 욕심이 난다. 이사가 됐다. 처음 사회 생활 시작할 때 연봉의 세 배쯤 되는 월급을 받고, 집은 우리 집은 아니지만 두 배쯤 넓어졌다. 둘이 던 가족이 넷이 되었고 난생 처음 새 차도 샀다. 그렇게 13년을 꼬박 앞만 보고 달려왔다. 회사의 인정, 얼마 안 되는 재산,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불어나는 맛에 살았다.

그런데 친구가 없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만날 필요도 못 느꼈다. 회사에는 적이 생겼고, 일은 끝이 없다. 첫 번째 직장이 경영난으로 팀이 팔려나가고 문을 닫았는데, 두 번째 직장도 영 신통치가 않다. 미래가 불안하다. 일을 많이 했지만, 전문가는 아닌 것 같다. 가진 것도 내세울 만 하지 못한데 실력도 그저 그런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다.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살았다. 바쁜 사람은 여유 있는 휴식을 갖지 못한다.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뎌내려면 꾀를 내야 한다. 요령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러나 요령으로 낸 짬은 진정한 쉼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른아홉이 되었다.

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여전히 바쁘다. 아직도 꾀를 낸다. 마흔 하나. 그런데 올 해, 가을을 좀 앓고 싶다. 가끔 풍경을 보고 멋지다고 이야기하면 아내가 놀란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는 높고 파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짙푸른 녹음 속에 있으면 몸이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바꾸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내일 찾아 갈 숲이 기대되고 깊어가는 이 가을이 좋다. 조금 다른 사람이 되고 있어 좋다. 기왕 변한 마음, 매일 하늘을 보고, 해와 달을 보고, 별을 찾으며 숨을 돌려보자.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 성취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가을을 앓고 더위와 추위를 이기고 생동하는 봄을 즐기자. 그렇게 살아있는 나를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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